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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영화]남한산성 : 비극의 절정에서는 무엇이 사는 길인가
    문화생활/영화리뷰 2017. 11. 19. 17:07

    400년전 남한산성에서의 고립이 현대에 주는 메시지는 무엇일까.

    비교적 높은 네이버 평점(관객 8.18, 기자&평론가 7.50)을 받은 영화 <남한산성>의 리뷰 중에 '이 영화를 왜 만드셨는지 진심으로 묻고 싶다'라는 글이 가장 많은 추천을 받고 있었다. 민족의 수난과 비극인데 뭐 좋은 내용이라고 영화를 제작했느냐 하는 뜻이다.

    영화의 목적은 무엇인가

    그러나 오히려 영화를 보거나 만드는 목적은 무엇이어야 하는가 되묻고 싶다. 

    간직하고 싶은 삶의 아름다운 순간만을 표현하는 것만이 예술은 아니다. 인생의 황폐함, 혹독함, 비극을 못본 체 하고 넘어가야 하는가, 아니면 품고 기억하며 살아야 하는가에 대한 감독의 대답이 바로 <남한산성>이다. 힘든 국면일수록 사람의 진면목이 나타나게 되고 엄혹한 상황에서 인간들은 각자의 생각에 따라 갈라진다. 입장이 극단적으로 부딪히는 그 역사적인 순간에 감독의 관심이 머물렀다. 그는 조용히 외치고 있는 중이다. 비극도 삶의 한 단면이다. 

    어떤 선택을 했을 것인가

    사실 그 시대적 상황에서 내가 최명길과 김상헌 두 대신 중 어떤 입장에 섰을지 상상하는 일은 간단하지 않다. 

    일찌감치 청나라 황제에게 항복을 하는 것이 최선이라고 주장하는 주장도 사실은 역사적으로 정리된 사실을 알고 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외부와의 교류가 차단된 상황에서 각종 소문과 추측이 난무하고 있고, 지원군의 존재도 불확실한 상황에서 과연 의리를 버리고 투항하는 길이 정녕 안녕을 도모하는 길이라고 장담할 수 있었을까. 당시 상황에서 의리명분론은 결코 가볍게 넘길 수 있는 입장은 아니었을 것 같다.

    만백성과 더불어 죽음을 각오하지 마시옵소서 (최명길)

    명길이 말하는 삶은 곧 죽음이옵니다 (김상헌)

    인조의 무능을 강조하고자 하는 영화인가

    여러 리뷰에서 무능한 인조로 대표되는 통치자의 중요성에 대해서 느꼈다는 반응이 있다. 그러나 의외로 영화에서 나타나는 인조에 대한 감독의 시각은 비난조가 아니었다. (일단 인조 배역의 배우가 박해일..ㄷㄷ, 그는 <남한산성>과 같은 시대를 그리고 있는 영화 <최종병기 활>에서는 청에 개인적 차원에서 적극적으로 맞선 인물이었다)

    당시 조선의 군사력이 청나라에 비해 약한 탓이 오로지 임금의 잘못은 아니었을 것이다. 전란이 수습되지 않아 국력이 약한 시절이었고 원군을 보내줄 국가도 없는 조선의 임금에게 힘이 있었다면 얼마나 있었을 것인가. 게다가 인조는 제 힘으로 왕이 된 인물도 아니라 일부 기득권 사대부의 반정을 통해 즉 남의 의지와 힘으로 보위에 오른 인물이었다.

    영화는 과도한 역사적 책무를 요구하지 않고 오로지 인조가 느꼈을 인간으로서의 감정과 생각에 초점을 맞추었다. 그게 공정한 것이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최명길(실리)과 김상헌(명분)으로 대표되는 중요한 두 입장의 설전 속에서 인조의 입장은 명확히 드러나지 않는다. 그러나 인조는 비굴함을 택하는 대신 끝끝내 자신의 목숨을 보전함으로써 결국 종묘와 사직을 보전하고 왕조의 생명을 유지할 수 있었다. 이것이 그가 생각한 자신의 역사적 사명이었을 것이다.

    나는 살고자 한다 (인조)

    무엇이 그대로이고 무엇이 바뀌었는가

    개인적으로 영화에서 가장 인상적으로 다가온 장면은 바로 영화 말미에 인조가 빈 궁궐로 다시 돌아오는 장면이다. 

    오랑캐라 취급했던 대청국의 황제에게 3번 절하고 머리를 9번 조아리는 대굴욕을 당하고 임금은 청색 옷을 입은 채 텅 빈 옛집으로 돌아왔다. 전각은 예전과 같은 모습을 유지하고 있었지만 눈이 내리고 반기는 이 하나 없어 쓸쓸함은 극대화된다. 텅 빈 궁궐의 옥좌는 아무일도 없었다는 듯이 주인을 기다리고 있다. 인조(=박해일)는 나지막히 한숨을 '후...'하고 내쉰다.

    겉으로는 바뀐 것은 아무 것도 없다. 외적도 곧 물러날 것이고 궁궐도, 옥좌도 모두 그대로다. 하지만 남한산성에서 왕이 임금을 상징하는 주상(빨간 옷)이 아니라 신하의 옷을 입고 나오는 순간 모든 것이 바뀌었다. 그래도 임금은 다시 자신의 자리로 돌아가기로 한다. 

    디딜 곳조차 없는 땅에서도 다시 민들레꽃은..

    영화는 이렇게 전한다. 추위가 아무리 매섭다 한들 겨울이 이렇게 깊었으니 필시 봄이 올 것이고 민들레꽃도 다시 필 것이다. 아름답지 않은 역사라고 시선을 돌려 다른 곳에 두지 않고 영화는 담담하게 비극을 그렸다. 이육사의 시 '절정'이 이만큼 잘 어울리는 영화가 있을까 싶어서 말미에 시를 붙여본다.


    절정

               이육사

    매운 계절의 채찍에 갈겨
    마침내 북방으로 휩쓸려 오다.

    하늘도 그만 지쳐 끝난 고원
    서릿발 칼날진 그 위에 서다.

    어디다 무릎을 꿇어야 하나
    한 발 재겨 디딜 곳조차 없다.

    이러매 눈 감아 생각해 볼밖에
    겨울은 강철로 된 무지갠가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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