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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영화]혈의 누: 인간이라는 굴레
    문화생활/영화리뷰 2017. 10. 3. 23:11

    명절이라 TV에서 영화 <고산자,대동여지도>를 방영하는 걸 좀 봤다. 세련되지도 않고 개연성도 없는 국뽕 감성이 나오는 씬을 보고 있노라니, 도대체 어떤 감독이 영화를 이렇게 못만들었나 싶어서 찾아봤더니 강우석 감독이었다. 그의 필모그라피를 검색하다가 우연히 <혈의 누>라는 작품의 기획을 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혈의 누>는 사실 오래 전에 한 번 봤을 때에도 강렬한 인상이 남았고 두 번째 보았을 때 좀 더 깊은 맛을 느낄 수 있는 영화였다.

    외형적으로는 잔인한 형벌 장면과 그를 모방한 복수 살인 장면이 상당히 적나라해서 수위가 높은 편이다. 실제로 이 영화는 19세이상 관람가인 것으로 알고 있다. 그러나 한 편으로는 이야기가 담고 있는 철학 자체가 인간의 본성과 이중적 심리를 다루고 있는 터라 생각할 거리가 많다.

    인간의 이중성

    여러 리뷰에서 다루고 있듯이 이 영화의 주요한 주제는 '인간의 이중성'이다. 강객주는 계급사회였던 조선에서는 드물게 만민이 평등함을 주창해 온 사람이다. 강객주는 이야기의 주 무대인 동화도에서 제지업을 발달시키고 주민들에게 저리로 융자를 해주며 선정을 펼쳐왔다. 그러나 막상 자신의 여식의 목숨을 살려준 두호에 대해서는 출신이 천하다는 이유로 딸에 대한 연정을 허락하지 않고 도리어 폭행한다. 대부분의 주민에게 경제적인 윤택함과 평등한 처우를 베풀었던 강객주였지만, 자신의 자식이나 다름없던 두호에게 결국 천주쟁이라는 모함을 받아 목숨을 잃게 되는 비극에 처한다.

    마을 주민들은 강객주 덕분에 입에 풀칠이나 간신히 하고 살던 처지에서 경제적인 향상을 도모할 수 있었음에도 막상 강객주가 모함을 받아 위기에 처할 때 그 누구도 제대로 도와주지 않았다. 도리어 강객주에게 다소간의 채무를 지고 있었던터라 주민들은 그의 죽음을 방조하기에 이른다. 더욱 극악한 모습은 영화의 후반부에서 강객주의 원혼을 달랜다며 마지막 발고자였던 두호를 단체로 살해하는 장면에서 나타난다. 강객주의 원혼으로부터 본인들의 안위를 지키기 위해 결국 자신들도 공범이나 다름없음에도 두호를 희생양으로 삼는 것이다.

    사건을 조사하러 중앙정부에서 파견나온 수사관 원규는 영화 내내 평정심을 잃지 않는 합리성을 상징하는 인물이다. 과학에 대한 지식도 있으며 그러므로 귀신도 믿지 않는다. 시신을 부검하는 모습, 안경을 쓴다는 사실, 철두철미하게 수사를 하는 모습이 이채롭게 비친다. 마을 주민들이 강객주의 원혼에 의한 복수라며 공포에 빠지고 무당이 혹세무민하고 있을 때에도 원규는 공포에 빠져 이성을 잃지 않고 열쇄살인의 비밀을 풀 열쇠를 집요하게 찾고 범인의 실체에도 점차 가까워진다. 그러나 7년전 강객주의 억울한 죽음에 자신의 아버지가 상당부분 관여하였다는 사실을 알게된 이후 어쩔줄 몰라하는 모습을 보이고, 결국 진실을 바다에 묻기로 결심하는 듯한 행동을 취한다.

    뭍의 방식으로 모든 걸 판단치 말라

    복수 살인의 중심에 있는 김인권은 원규를 만난 자리에서 민심을 논하며 이렇게 말한다. "뭍의 방식으로 모든 걸 판단치 마십시오"

    "뭍의 방식으로 모든 걸 판단치 마십시오"(김인권)


    원규는 원리원칙과 유교이론에 입각하여 백성들의 처지와 입장을 이해하라고 하면서 김인권의 가혹한 처사를 나무라지만, 김인권은 그건 현실을 몰라서 하는 말이라고 묵살한다. 명분론이나 교과서적인 이야기(뭍의 방식)로 섬을 판단하지 말라는 것이다.

    사실 영화 속 백성들의 행태를 끝까지 보면 김인권이 극악무도한 인물이라 저런 말을 내뱉았다고만 치부할 수 없다. 어떤 면에서는 그의 말에도 일리가 있었다. 영화 <어퓨굿맨>에서 제섭 대령이 법정에서 외치는 대사 "넌 진실을 감당할 수 없어;You can't handle the truth"가 생각나는 대목이었다.

    인간인 이상 그 누구도 자유로울 수 없다

    인간은 환경의 지배를 받는다. 아무리 착한 심성을 지닌 사람이라 할지라도 특정한 환경 속에서는 극도로 이기적인 일을 저지를 수도 있으며, 군중심리에 휩쓸릴 수도 있는 것이 인간이다. 서는 곳이 다르면 풍경이 바뀐다고 하였다. 주어진 환경과 조건에 따라 줏대없이 변하는 인간의 행동과 나약한 심성을 보면 인간이 이중적이라고 볼 수 있는 것이다.

    외세의 침입과 천주교의 전파, 세도정치에서 오는 혼란과 역병의 창궐은 19세기 조선이 얼마나 유래없이 혼돈스러운 상황에 처해있는지를 잘 보여준다. 특히 중앙정부의 권력과 통치가 제대로 미치지 못하는 고립된 섬에서 개별 인간 군상이 생존의 위기에 대처하는 다양한 모습 속에서 우리는 인간의 행동과 심리 본연의 모순성을 발견하게 된다.

    한편, 영화는 2시간의 러닝타임 동안 좀처럼 귀신이라던가 기적을 보여주지 않는다. 주민들은 고발자들이 죽어가는 사건을 강객주의 원혼이 벌인 복수라고 보았지만, 실은 귀신의 짓이 아니라 김인권이 과학적인 지식에 입각하여 벌인 일이었다. 

    그러나 영화 후반부에서 핏물이 비로 쏟아지는 단 한 번의 기적이 일어난다. 강객주는 능지처참을 당해 죽으면서 '자신의 피가 비가 되어 내리는 날 자신이 복수를 하기 위해 찾아올 것'이라고 말한 바 있다. 비는 강객주의 복수를 상징하며, 영화에 등장하는 모든 인물들이 비를 맞는다는 점에서 그 처벌은 어느 누군가를 특정하는 것이 아니라 보편적임을 알 수 있다. 결국 그 누구도 인간의 모순적인 운명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는 것을 상징하는 것은 아닐까?

    다시 보아도 <혈의 누>는 사극의 독특한 분위기 위에서 쌓아올린 한국 영화의 수작으로 꼽을만한 작품이다. 앞으로 이런 사극풍 스릴러가 더 나오게 된다면 더할나위 없이 기쁠 것 같다. 그런데 같은 차승원이 나온 <고산자, 대동여지도>는 완성도가 너무 떨어져서 실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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