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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나의 재수 이야기(2) : 한국은행 취업 재수
    공부 관련 이야기 2019. 1. 12. 19:17

    지난 글에서 대학 반수시절 수기에 이어서, 오늘은 취업 재수에 대해서 말하고자 한다

    예전과 달리 청년실업률이 높은 이 시대에 취업 재수는 주변에서 흔하게 일어나는 일이다. 나의 경우에는 한국은행에 두 번 지원했고 2014년말 두 번째 시도 끝에 합격하여 벌써 4년째 다니고 있다. 

    취업을 준비하던 때의 심정으로 돌아가서 누군가에게는 내 이야기가 참고될 수 있지 않을까 하여 내 경험을 소개하고자 한다.

    왜 한국은행을 지망하게 되었는가

    이 질문에 답을 하기 위해서는 애초에 왜 경제학을 전공하게 되었는지 간략하게라도 설명하고자 한다.

    나는 고등학교 1학년 때 아빠 친구 아들에게서 여름방학에 2달 정도 과외를 받은 적이 있었다. 선생님은 서울대 경제학과를 휴학하고 행정고시를 준비하는 분이었는데, 서울대 생이라는 자체도 나에게는 매우 존경스러운 존재라서 선생님을 따라서 경제학과를 가야겠다는 막연한 생각을 갖게 되었다.(나처럼 중고등학교 때 우연히 만난 사람, 우연히 본 책이나 방송 같은 게 대학 전공선택에 엄청나게 큰 영향을 미친다)

    그래서 이런 철없는 생각으로 경제학을 전공으로 삼았고 반수끝에 들어간 경제학부를 2학년까지 다니고 군대에 가게 되었다. 어느날 군대 사무실에 어떤 장교분이 오더니, 내가 서울대 경제학부니깐 한국은행에 들어가면 좋겠다는 말을 하셨다. 

    그때까지는 부모님 권유도 있어서 행정고시를 봐야겠다는 생각은 있었는데, 귀가 얇은 나는 한국은행은 어떤 곳인지 호기심이 생겼다. 게다가 제대하면서 2주 정도 공부하여 시험삼아 행정고시 1차를 봤는데 내 생각보다 너무 짜증나는 경험이었다. 더 공부하고 싶은 마음도 싹사라졌다. 제대를 앞둔 시점에 부모님께 '나는 한국은행을 갈꺼야'라고 선언하고 입행을 위한 준비를 하기 시작했다.

    대학교 3학년으로 복학하면서 한국은행 합격자가 많다는 학술동아리에 가입하고 4학년 올라가는 겨울방학부터 자연스럽게 스터디를 구성하여 본격적으로 시험 준비를 하게 되었다.

    대책없이 준비한 첫번째 도전, 입행 스터디

    첫번째 필기시험의 준비기간은 2012년12월부터 2013년 10월까지 약 10개월여다. 

    경제학 과목인 미시경제학, 거시경제학, 국제경제학, 계량경제학과 같은 과목을 공부하고, 문제를 풀고, 서로 질문하면서 이해를 도모하는 스터디를 지속하는 일상이었다. 우리는 일주일에 두 차례 정도 만나서 서로의 진도를 체크하고, 잡담하며 시험을 준비했다. 틈틈이 입행 논술을 대비하기 위해서 한국은행에서 발간하는 보고서도 읽고, 경제신문 기사도 읽기도 한다.

    무엇보다 가장 중요한 게 필기시험 문제를 잘 풀어내는 것인데 어느 한 과목도 소홀히 해서는 안되고, 꼼꼼히 공부하는 게 중요하다고 느꼈다. 경제학 개념이 복잡한 게 많아서 어려 권의 교과서와 참고서를 읽는 데 초반에는 시간이 많이 걸렸다. 그 뒤에는 알고 있는 내용을 잊어버리지 않게 반복하고 또 반복하는 과정이었다. 시험 막판이 되면 모의고사와 기출문제를 시간을 재면서 풀기도 한다. 문제가 떨어지면 외국대학의 계량경제학 기출문제 등을 가지고 풀고, 분석하기도 한다.

    그렇게 2013년 10월이 되고, A매치데이라고 하는 금융공기업들의 필기시험 일에 성균관대에서 필기시험을 치렀다. 문제 난이도는 평소 한국은행의 문제보다는 쉬운 편이라고 느꼈고 몇 개만 틀려도 합격이 어려울 것이라는 게 같이 시험을 치른 주변 사람들의 중론이었다. 다행히 나는 빼먹은 문제 없이 다 풀고 나왔는데, 큰 실수만 없다면 좋은 점수를 받을 것이라는 느낌이 들었다. 예상대로 필기시험에 합격하고, 주변의 아는 사람들 중에서 합격한 6명과 함께 바로 면접 스터디를 구성하였다.

    면접 스터디에서 모의 면접도 진행하고, 나올만한 질문을 예상하여 그 주제로 공부를 하기도 했다. 면접일자까지 여유가 없어서 금방 면접을 보게 되는데 면접합격자 중에서 최종합격까지의 경쟁률은 2대1이다. 당시에는 필기시험 점수와 면접 점수를 합산해서 최종 합격을 결정하였다. 

    나는 실무면접에서는 특별히 불길한 느낌은 받지 못했는데, 임원면접에서는 점수가 깎일것 같은 인상을 줬던 것 같아서 불안했다. 그렇게 최종합격자 발표 일자가 도래했고, 당일에 불안하고 초조한 상태로 하루를 보내다가 저녁무렵에 합격자 발표가 났다는 문자를 받았다. 급하게 핸드폰으로 바로 이메일을 확인해보니 '불합격'이라는 글자가 무심하게 나를 놀래키고 있었다. 같이 식사를 하던 친구들이 모르게 별일 아닌 것처럼 조용히 식사를 계속했다.

    어떤 자신감 때문인지 모르겠지만 나는 불합격은 예상하지 못했다. 따라서 불합격 이후의 사태에 대해서는 준비가 전혀 되어 있지 않았다. 대학교 학점은 졸업이 가능하도록 다 채워놨지만, 당장 취업이 안되었기 때문에 졸업을 하는 것은 무의미했다. 게다가 한국은행 말고 다른 직장은 전혀 지원서를 내지 않은 상태였다. 말그대로 한 군데에 올인을 한 것이다.

    취업을 하기 위해서는 다음해 상반기 채용에 지원하거나, 한국은행에 재도전 하기 위해서 1년을 기다려야 했다. 공부만 하기에는 너무 긴 시간이었다. 실무경험 없이 다시 학생으로 돌아가서 예전과 별 다를바 없는 1년을 보내야 하는 게 두려웠다.

    인턴 근무, 그리고 두번째 도전

    불합격을 알게 되고 그날 기숙사로 돌아와서 학교 경력개발센터 같은 사이트에 올라온 채용 공고를 읽어보기 시작했다. 인턴이나 그와 유사한 조건으로 채용하는 공고들이 여러 군데 눈에 들어왔다. 다음날부터 여러 군데의 회사에 인턴 지원서를 제출했다.

    몇 곳에서는 긍정적인 응답이 왔고 두 군데에서 인턴 면접을 보았다. 다행히 한 곳에서 일찍 인턴을 합격시켜줘서 2014년 1월부터 6개월간 인턴으로 일할 수 있는 기회를 얻었다. 

    인턴은 2014년 7월초에 종료 되었고, 10월이면 다시 한국은행 필기시험이 있을 예정이었다. 첫 번째의 실패를 교훈삼아서 이번에는 한국은행 뿐만이 아니라 다른 기업에도 지원서를 제출하였다. 그런데 지원서를 작성한다는 게 생각보다 시간이 많이 드는 일이라서, 단순히 복사 붙여넣기로 끝나는 작업이 아니었다. 충분히 해당 기업에 대해서 조사하고, 인재상은 분석해서 겸손하면서도 자신감 있는 언어로 표현해내는 것은 품이 많이 드는 일이다. 시간을 많이 뺏겨서 자칫 한국은행 지원에 쓸 시간이 부족할까 걱정이 많이 됐다.

    2014년 10월, 어김없이 A매치데이는 다가왔고 용산고등학교에서 한국은행 필기시험을 다시 보게 되었다. 두 번째 치른 한국은행 필기시험은 첫 해에 비해서 더욱 어려워진 느낌이었다. 시험이 끝나고 나니 내가 어려운 문제 위주로 공부를 하지 않았던 게 뼈아팠고, 합격을 장담할 수 없었다. 오히려 떨어져도 이상할 게 없는 정도로 손을 못댄 문제도 많았다. 걱정과 달리 필기시험에 합격하였고 곧바로 면접 준비에 들어갔다. 전체 과정을 두 번째로 경험해보는 나로서는 첫 해에 비해서는 면접준비 과정이 수월했다.

    한국은행 외에 다른 기업들의 인적성 시험도 빠짐없이 보았다. 다행히 인적성 시험은 기업마다 유형이 비슷했기 때문에 SSAT(삼성 인적성) 위주로 공부를 진행하였다. 다행히 두 번째 해에는 지원했던 여러 기업에서 좋은 소식이 들려왔다. 10월 말에 삼성전자에 마케팅 직군에서 먼저 최종합격 소식을 듣게 되어 취업에 대해서 한 시름 내려놓을 순 있었다. 

    한국은행 면접에서는 전년도의 경험이 있어서 무리 없이 진행하고자 최대한 노력했다. 첫 해에는 청년의 패기를 보여주겠다는 생각도 있어서 적극적이고 자신감 있는 태도로 면접을 치렀는데, 둘째 해에는 전년도의 실패를 거울삼아서 최대한 튀지 않고 안전한 대답을 하고자 노력했다.

    합격, 그리고 바뀐 마음가짐

    운전면허 학원을 등록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 홀로 사당 인근 식당에서 저녁을 먹고 기숙사로 들어오는 데 핸드폰 문자 알림이 울렸다. 합격자 발표가 났으니 확인해보라는 내용이었다. 바로 이메일을 확인해보니 작년에는 '불합격'이라고 적혀있던 자리에 이번에는 '합격'이라는 두 글자가 보였다.

    면접에 합격하게 되면 이런 이메일을 받게 된다

    취업 재수는 내 삶에 큰 영향을 준 사건 중 하나다. 만약 한 번에 합격을 했다면, 내 운명이 마치 내 뜻대로 진행된다는 자신감을 여전히 가지며 살아가고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첫해에 전해진 '불합격'이라는 글자는 내 자만심에 가해진 죽비소리와 같은 일침이었다. 세상사가 절대로 나를 중심으로 돌아가는 게 아니며, 합격과 불합격 사이에는 내가 좌지우지할 수 없을만큼 큰 우연적 요소가 작용한다는 사실을 정확히 깨닫는 계기가 되었다. 

    대입과 취업 모두 우리 삶에 중대한 영향을 끼치는 일이지만, 운이 정말 많이 좌지우지 한다. 내 삶에서 대입과 취업 모두 재수를 하면서 나는 내가 성취한 것에 대해서 겸손해야 하며, 내가 놓친 것에 대해서 너무 나 자신을 책망해서는 안된다는 마음가짐을 갖게 된 계기가 되었다. 혹시라도 무엇을 아깝게 놓친 사람이 있다면 고민이 되겠지만 같은 것에 다시 도전하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 아님을 알려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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