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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나의 재수 이야기(1) : 반수시절 수기
    공부 관련 이야기 2018. 9. 9. 22:12

    재수라는 말은 원래 수능을 다시 본다는 뜻이다. 재수라는 단어의 유래를 떠올려봤을 때 현실에서는 원래의 뜻보다 더 광범위하게 사용되고 있는 말이 아닐까 싶다. 시험이나 면접을 필요로 하는 취업이나 고시 영역 뿐 아니라, 올림픽 유치 삼수, 사수끝에 수상 이런 말도 널리 쓰이고 있는 걸 보면.

    여태껏 나는 재수를 두 번 했다. 대학 그리고 취업.

    그 중에서 대학 재수생은 크게 두 부류로 다시 세분화 할 수 있다. 생(生)재수생과 반수생으로 말이다. 재수생은 근 1년을 다시 수능공부하는 데 쏟는 수험생을 말하지만, 반수생은 단어에서 유추할 수 있듯이 반쯤 걸친 사람들이다.

    여기서 '반(half)'이라는 말을 쓰는 건 시간 상으로도 반을 의미하고, 신분 상으로도 반을 의미한다. 일단 자신의 성적으로 갈 수 있는 대학을 진학한 뒤에 1학기에는 대학생활을 하고 여름방학 때부터 수능공부를 하는 사람들이다. 그래서 반은 대학생이면서 반은 재수생인 신분이다.

    내 개인적인 경험으로는 반수를 결정하는 데 있어서 여러가지 갈림길이 존재한다. 고민이 필요한 지점은 크게 1. 대학 생활에 얼마나 매진할 것인지, 2. 휴학을 할 것인지, 3. 휴학을 했다면 재수학원을 다닐 것인지였다.

    반수 성공은 왜 어려운가

    얼핏 보면 반수는 어려운 일이 아니다. 여름방학부터 바짝 공부해서 11월에 수능을 다시 보는 것이 얼마나 복잡한 일이라고.. 그러나 대학에 입학하는 순간 어려움이 찾아온다. 

    2~3월이 되면 새내기들이 입학하며 오리엔테이션과 새터 등으로 캠퍼스 분위기가 매우 고조된다. 4~5월이 되면 각종 축제와 단체행사, 엠티 시즌이다. 6월~8월이 되면 여태껏 맛보지 못했던 긴 방학 기간이다. 대학생활을 하면 자의와 상관없이 엄청나게 많은 시간을 대학생활에 쏟아부을 수밖에 없고, 중간고사와 레포트, 기말고사 때문에 도서관 밤샘 등을 여러 차례 하며 자연스레 11월에 예정된 수능 공부에 대해서 집중력이 흐려질 수밖에 없다.

    이 과정에서 많은 예비 반수생들이 사라진다. 대학생활도 즐겁고, 어디를 가도 비슷하지 않겠냐는 생각도 들고, 대학에서 만나는 동기 선배들과의 삶이 익숙해지면서 반수의욕이 꺾이게 된다. 게다가 수능공부를 다시 해보면 암기과목이야 어떻게든 된다고 하지만, 수학과 같이 기초부터 꾸준하게 공부해야하는 영역들은 몇 개월만 손을 놓더라도 기억이 안난다.

    기적의 스케쥴

    난 처음부터 반수를 결심한 건 아니다. 수능은 조금 못봤지만 논술에서 기적적으로 선전하여 배치표보다 좋은 학과를 갔다. 하지만 집에서는 예전 성적이 아쉽다며 반수를 권유하셨고 이에 따라 나도 반수를 하기로 결심했다.

    그러나 수시로 막차를 타고 귀가하고, 다른 학교 행사까지 놀러가는 즐거운 캠퍼스 생활을 하면서 수능 책을 들여다볼 여유를 내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여름방학이 되어 다시 고향에 내려왔을 때도 상황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야심차게 집 근처 독서실을 끊어놓고 공부를 하려고 했지만, 머리는 금방 아파와서 간식을 찾고, 좀만 앉아있어도 졸려서 집에 들어가서 쉬었다. 많은 시간을 스타리그 중계를 보거나, 딴짓을 하며 보냈다.

    2학기 시작할 무렵이 되자, 이제 정말 큰일이다 싶었다. 2학기에 휴학을 하고 재수학원을 다니려면 학원비며 월세 때문에 돈도 많이 들것 같아서 차라리 2학기에도 대학을 다니는 게 낫겠다 싶었다.

    그래서 일주일에 3일만 학교에 가는 기적적인 방법을 찾아냈다. 월,수,금요일에만 수강신청을 해서 주3파 시간표를 짰다. 그러나 3일만에 많은 수업을 들어야 하니, 월요일에는 아침 9시부터 저녁 7시까지 학교에서 쉴 새 없이 지낼 판이었다.

    뜻하지 않은 고생길

    월요일에는 학생회관에서 에그 샌드위치를 하나 사서 강의실 이동하는 중에 먹으면서 점심 끼니를 챙겼다. 아침에 7시에 일어나 아침도 못먹고 등교하고, 저녁에 기숙사에 돌아오면 시간이 늦어서 저녁도 제대로 못먹으니 하루에 샌드위치 1개로 버티며 수험생활을 한 것이다. 대신 학교에 가지 않는 날에는 밖에 나가지 않고 공부를 했다.

    재수 경험이 있는 사람들은 비슷한 경험이 있겠지만, 시험걱정에 대한 스트레스 때문에 새벽 2~3시에 잘 때도 많고 눈을 붙여도 걱정과 스트레스가 거대한 폭포수가 되어 콸콸 쏟아지는 꿈을 꾸기도 하였다.

    이렇게 대학도 다니며 수험생활을 하는 힘든 시기를 보내면서 느낀 점이 있다. 그것은 사람이 두 가지 일을 동시에 준비하는 것은 굉장히 어렵다는 것이다. 얼핏 보면 '대학 다니면서 수능공부하는 게 그렇게 어려운가?'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그러나 하루에 쓸 수 있는 우리의 심리적 자원은 유한하고 생각보다 집중력과 인내심은 금방 바닥난다.

    만약 다시 준비하게 된다면?

    결과적으로 11월에 치른 수능에서 나는 기대보다 좋은 성적을 받았다. 시험을 잘 못보더라도 돌아갈 학교가 있다는 점이 심리적인 부담을 덜어줘서 가능했던 것 같다.

    그러나 좋은 결과를 받았다고 해서 내 준비과정에 문제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좋은 결과에는 내 노력뿐만 아니라 운도 상당히 작용하는데, 이번 경우에는 여러모로 행운이 많이 따랐던 것 같다. 

    만약 지금 그때와 같은 상황이라면 어떻게 준비하는 것이 맞았을까? 일단 반수를 하기로 마음먹었다면 최소한 2학기에는 휴학을 하는 것이 맞다. 수능을 보기 위해 학교공부를 부실하게 하고 결석을 하게 되면 학점 관리도 잘 안될 가능성이 많은데 이렇게 되면 나중에 후회할 수 있다. 그리고 대학생으로 살면 술자리나 놀 일이 많은데 모두 공부시간 부족으로 이어진다.

    그리고 나는 학원비와 월세가 아까워 학교 기숙사에 살기 위해 휴학을 하지 않았었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원하는 대학에 가기 위해서 필요한 투자이므로 그 때 너무 아까워할 필요는 없었다. 목표를 위해 전진하는 과정에서 꼭 필요한 일이라면 적정한 돈을 쓰는 것이 정말이지 중요하다. 돈을 아끼려다가 두고두고 후회했던 경험이 있다면 잘 이해할 것이다.

    10년이나 시간이 지난 지금도 반수생 시절은 나에게 중요한 기억으로 생생하게 남아있다. 그만큼 반수는 다른 어느 것 못지 않게 큰 고생이기도 하였다. 또 한편으로는 그때를 회상하면 '그렇게 말도 안되게 준비하고도 성공하다니 억수로 운이 좋았다'라는 생각에 앞으로는 정말 착실히 살아야 하겠다는 다짐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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