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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책]사피엔스(1) : In pursuit of unhappiness
    문화생활/책 리뷰 2017. 6. 11. 22:04

    <사피엔스> 유발 하라리 저

    책 날개에 적혀있는 저자 유발 하라리(Yuval Noah Harari)의 소개를 보면 그는 중세 역사와 전쟁 역사를 전공했다. 그리고 1. 역사와 생물학의 관계, 2. 역사에 정의는 존재하는지, 3. 역사가 전개됨에 따라 사람들은 과거에 비해 더 행복해졌는지를 거시적인 안목으로 보는 연구를 하고 있다고 소개된다.

    이 책 <사피엔스>는 생물학과 역사를 결합하는 독특한 구조를 취하고 있는데, 막상 책의 내용을 파 보면 하나의 큰 서사를 고집하고 있기 보다는 미시적인 개별 주제에도 꽤 집중하는 느낌이다. DNA와 진화가 중요한 모티브이면서도 책의 모든 지점을 관통하는 공통의 테마는 아니다. 책의 개별 부분은 상당히 여러 개의 주제로 분리되어 있으며 서로 다른 여러 문제의식들의 연합이라고 볼 수 있다.

    나는 이 책을 읽으면서 재밌고 중요한 몇 가지 물음을 발견하였다. 어떤 지점은 무릎을 탁 칠만큼 공감된다. 그러나 하나의 포스트에 모두 담을 수 있는 공통의 내용은 아닌 것 같아 여러 번에 걸쳐 소개하기로 한다.

    농업혁명 이후 사피엔스의 삶은 비참해졌다.

    유발 하라리는 농업혁명에 따라 우리가 밀을 길들인 것이 아니라, 밀이 우리를 길들였다고 주장한다.(p.126) 그에 따르면 사피엔스는 농업이라는 과업에 맞게 진화하지 않았다. 그래서 농업으로 이행하면서 사피엔스는 디스크 탈출증, 관절염, 탈장 등 수많은 병이 생겼다. 게다가 농업혁명 덕분에 식량의 총량이 확대된 것은 사실이나 그렇다고 사피엔스가 더 많은 여유시간을 가진 것도 아니다.(p.124)

    위의 주제는 하라리의 중요한 문제인식 중 하나로 보이는데, 그 주제는 바로 역사가 전개된다고 해서 사람들이 더 행복해지리라는 보장은 없다는 것이다. 농업혁명 이후 사피엔스의 개체수가 증가했다는 측면(=즉 더 많은 DNA)에서는 의미가 있겠지만 그렇다고 개별 사피엔스는 농업혁명 이후 늘어난 고된 노동으로 인해서 행복이 증가하지 않았다. 그런 의미에서 하라리는 이렇게 주장한다.

    농업혁명은 역사상 최대의 사기다.(p.124)

    정보혁명 이후의 삶..

    공감한다. 책의 다른 부분에서도 나타나지만, 시간이 지나고 문명과 기술이 발전했다고 해서 개별 인간의 행복도가 증진한다고 볼 수 있는 여지는 크지 않다. 더 좋은 기술이 더 나은 삶을 언제나 보장하는 것은 아니다. 

    통신기술이 발달하면서 편지 대신 이메일이 등장하고, 유선전화가 아닌 무선전화와 무선인터넷 기술이 인간의 생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빠르게 늘어갔다. 나와 관련된 업무 측면에서만 봐도 과거에 사무직 직원들의 주요한 업무는 손으로 종이에 일일이 보고서를 쓰거나 타자기에 글을 입력하는 일이었다. 필요하면 유선전화를 이용해 소통하고, 연락은 미리 약속을 잡아 정해진 장소에서 만났다. 업무는 상당히 아날로그적이었다. 그러나 낭비가 없고 본질에 충실했다.

    source : Pinterest

    과거의 모든 수고와 시간을 절약했다. 하지만 내가 좀 더 느긋한 삶을 살고 있는가?(p.135)

    그러나 수 십년간 통신기술이 발달하면서 과연 사무직 직원들의 업무는 줄어들었는가? 수 십장의 종이가 줄간격과 표 모양이 이상하다는 특이한 이유로 버려지며 낭비되고, 큰 실수가 아님에도 비슷한 글을 썼다 지우기를 반복한다. 업무의 효율성이 크게 증진되었음에도 직원의 업무시간은 오히려 분 단위로 빼곡히 찬다. 디스크 탈출증, 관절염, 탈장은 비단 농업혁명 이후 농부들의 직업병인 것만은 아니다.

    퇴근 이후에도 자유는 보호받지 못한다. 업무시간이 아니더라도 휴대전화를 붙들고 다니며 연락에 응답하게 되고, 차나 비행기 안에서도 업무를 처리하게 된다. 무선 인터넷으로 인해 이동 중에도 업무가 가능하기 때문이다. 이런 저런 적당한 핑계로 업무에서 빠져나갈 구멍은 점점 작아지고 무엇보다도 업무량은 줄지 않는다.  

    그러나 폰 노이만이나, 미 국방성, 빌게이츠, 워즈니악, 스티브 잡스를 탓할 일은 아니다. 누구의 큰 그림 위에서 이러한 결과가 나온 것은 아니다. 농업혁명이 고대의 위대한 천재 혁명가가 일으킨 것이 아니라 사소한 일상의 개선을 바랐던 몇몇 사피엔스의 행동에서 비롯된 것이듯.

    일련의 사소한 결정이 거듭해서 쌓여, 고대 수렵채집인들이 타는 듯한 태양 아래 물이 든 양동이를 운반하는 삶을 살도록 하는 결과를 가져왔다.(p.1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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