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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책]대청제국:만주족 오랑캐의 역사?
    문화생활/책 리뷰 2017. 11. 12. 15:31

    열하일기에 등장하는 청나라

    요새 자주 보는 TV 프로그램 중에 JTBC의 <차이나는 클라스>가 있다. 그 중에서 고미숙 박사가 연암 박지원의 열하일기에 대해 강의하는 편을 보게 되며 이 시대의 역사에 대한 관심이 조금 생겼다. 

    source : jtbc 차이나는 클라스

    열하일기는 조선의 연암 박지원이라는 인물이 1780년(정조4년) 청나라 강희제의 칠순잔치인 만수절의 사절단으로 북경에 방문하였던 것을 남긴 견문록이다. 박지원의 풍모와 글도 신비로운 것이지만 그에 못지 않게 박지원이 방문한 그 시절 청나라의 모습도 궁금하였다. 얼마나 국세(國勢)가 대단했기에 열하일기에서 묘사되고 있는 자못 웅장한 사신단 방문이 있었던 걸까.

    그런 의문에서 출발하여 일본 교수 이시바시 다카오가 쓴 <대청제국 1616~1799(이하 대청제국)>을 읽게 되었다.  이 책은 청나라 건국의 배경부터 시작하여 청나라의 국세가 최고조에 달했던 청나라 역사의 전반부를 주로 다루고 있다. 이시바시 다카오는 일본 고쿠시칸대학 교수로 재직하고 있는 학자로서 할아버지부터 3대째 만주사와 청조사를 전공하고 있다.(일본의 가업승계 클라스 ㄷㄷ)

    대청제국 1616~1799

    청나라의 초기 역사를 중국인도 아닌 일본인이 저술한 책을 한국에서 읽고 있는 상황을 생각하니, 동아시아에서 서로 물고 물리는 역사의 연관성을 떠올릴 수 있었다. 또한 중국과, 한국의 시각이 아닌 제3의 시각에서 청나라를 조망할 수 있는 기회를 가질 수 있었다.

    광해군의 명,청 중립외교에도 불구하고 인조반정으로 광해군이 실각하고 인조가 보위에 오른다. 이로인해 명에 대한 의리와 사대명분론에 힘이 실리며 조선의 역사는 신흥 강국으로 떠오르는 만주족과 대립하는 방향으로 전개된다. 결국 조선은 임란 이후 몇 십년도 안돼 전란을 수습하기도 전에 정묘호란, 병자호란을 맞게 된다. 

    이 시대를 그리고 있는 작품들이 영화 <최종병기 활>, 책 <남한산성>이다. 청군의 무자비한 민간인 학살, 청군의 기동성과 잔인성이 크게 부각된다. 지금까지 청나라에 대해서 보고 들었던 컨텐츠들은 아래와 같다.

    • 국사교과서
    • 한명기, <병자호란>
    • 박지원, <열하일기>
    • 소설, <남한산성>(영화로는 아직 못봤음)
    • 영화 <최종병기 활>
    • 영화 <마지막 황제>

    책 <대청제국> 후기

    이 책을 읽고 나서 느낀 점은, 내가 부지불식간에 "중화 vs. 오랑캐"라는 대립구조 속에서 중국사를 막연히 이해하고 있어왔다는 점이다. 중국사에서 명나라는 한족이 세운 정통왕조이며 청나라는 오랑캐가 중원을 지배한 정복국가로 파악하였다. 하지만 책을 읽어보니 상황은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일반적으로 청조는 중국의 '정복 왕조'로서 원조와 함께 설명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원이 몽골제국에서 전환되는 과정과는 전혀 다른 특색을 보여주고 있다. (...) 홍타이지가 이룩한 대청국은 아이신국의 정치 체제를 한층 발전 시켰다. 그러나 그 체제를 지탱하는 경제 기반은 여전히 영역 내부의 한족 농경 지역에 의지할 수밖에 없었다.(p.135)

    대청은 입관 정에는 명 말의 반란 세력 중 하나로 간주되었지만, 항장 오삼계의 성도로 북경에 입성할 때 내세웠던 명분은 명조를 무너뜨린 이자성을 토벌한다는 것이었다.(p.147)

    주세페 카스틸리오네, 아옥석지모탕구도(阿玉錫持矛蕩寇圖)

    또한 팔기군으로 대표되는 팔기 제도에 대해서도 당연히 군사 조직일 것으로만 생각하였으나 실제로는 오랜 기간을 내려온 청나라의 정치, 사회조직이라는 점도 알게 되었다.

    • 팔기 : 군단(구사) 8개로 이루어진 군사소직이면서 정치 사회조직. 성년남자 300명으로 1니루를 편성하고 5니루는 1잘란, 5잘란은 1구사를 편성하였으니 1구사는 7500명정도 된다. 팔기에 속한 사람을 총칭하여 기인이라고 한다. 여기에는 만주인뿐만 아니라 몽골, 한 등 세 민족 중심으로 구성되었다.(p.106)

    청나라 혹은 만주족, 우리와의 관계

    일단 민족이란 개념이 상당히 근대적으로 세워진 개념이라는 점을 지적하지 않고 넘어갈 수는 없겠다. 고조선-삼국시대-통일신라-후삼국-고려-조선으로 이어지는 계보가 상당히 불완전한 개념이며 이들이 우리와 동류의 민족인지에 대해서도 의견이 상당히 분분하고 논란의 여지도 있기 때문이다. 요컨대 한국사라는 것은 사후적으로 포함하고 배제시킨 작업으로 만들어진 각색물이다.

    그럼에도 일단 이런 민족 구분을 어느정도 수긍하고 한민족이라는 존재를 인정하고 살펴본다면, 여진족(만주족)은 우리에게 어떤 관계를 지닌 것일까. 상당한 교집합을 지닌 존재라고 볼 수 있을 것 같다. 만주족과 우리는 고려시대부터 꾸준히 교류하고 역사 속에서 서로 관계하며 살아왔기 때문이다. 병자호란 이후 청나라와 조선의 조공 관계 이후에도, 일본이 세운 만주국(여기서 청국의 마지막 황제의 아이신기오로 부의가 다시 등장한다)과 식민지 조선의 관계 또한 매우 긴밀한 것이었다. 일본 제국이라는 거대한 시스템 위에서 조선과 만주는 서로 별개의 경제 체계가 아니라 철도를 기반으로 한 인적, 물적 교류가 매우 활발한 경제권이었다.

    앞으로도 기회가 되는 한에서 청나라 혹은 만주족에 대한 저술을 좀 더 찾아보면 재밌을 것 같다. 오랑캐의 역사는 단지 중국을 중심으로 둔 주변부 문화가 아니라, 역동적으로 전개되어 가는 유라시아 전체의 역사의 동학 위에서 살펴볼 때 비로소 그 의미를 지니기 때문이다. 이런 점에서 국사 교과서에 오랑캐 및 중국과 한반도 주변 민족에 대해서 풍부한 서술이 없다는 점은 아쉽다. 그들은 오로지 외침을 할 때만 역사 속에 나타났다가 어느새 사라질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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