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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왜 우리 회사는 쓸데없는 일을 시킬까?
    카테고리 없음 2017. 3. 5. 23:37

    과거와 달리 많은 일이 시스템화, 자동화 되었음에도 왜 인간은 여전히 야근을 하고 있는가?

    매일 국제금융 관련 지표를 취합하고 이에 대한 해설을 덧붙인 보고서를 작성하여 상사에게 보고하는 일을 맡았다고 해보자.

    그 작업은 아래와 같은 절차들로 구성된다.

    1. 블룸버그 PC나 인터넷 PC를 켜서 찾고 싶은 지표를 찾은 뒤에 2. 이 값들을 엑셀에 붙이고 3. 망간 이동을 통해 엑셀파일을 업무망 PC로 전송한 뒤, 4. 한글 문서의 표에 붙여넣은 뒤 5. 예쁜 서식으로 줄간격 자간, 행간, 가운데 정렬을 조정해서 6. 뉴스 기사 등을 참고해 적절한 나래이션을 덧붙이고 7. 프린트 하여 보고하는 작업이 필요하다.

    이 중 1,2,3,4의 작업은 시스템을 통해 구현한다면 자동화를 통해 완벽하게 재현할 수 있는 종류의 일이다. 오히려 사람이 수행하는 와중에 실수가 나올 가능성이 높다.

    반면 5,6,7의 작업은 상사가 컴퓨터가 아닌 인간 독자이기 때문에 인간이 하는 게 맞는 종류의 업무다. 시스템적으로 비슷하게 구현하는 것이 불가능하지는 않으나 어차피 인간 독자에게 읽혀야 하는 글이니 만큼 결국 인간이 검수하는 쪽이 더 어필할 가능성이 크다. 인간의 언어와 문법 속에서 알기 쉽게 정리하지 않으면 인간 독자(즉 상사)는 좋은 글이라고 인정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실제 많은 종류의 일에서 상당 부분이 반복적인 루틴을 따르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쉽게 시스템화되거나 고쳐지지 않는 경향이 있다. 공용 PC에서 찾은 어떤 수치를 포스트잇에 적어와서 자기 PC에 옮겨서 보고서를 쓰고 다시 숫자가 틀리지는 않았는지 공용 PC에서 확인하는 비효율적인 작업이 사무실에서는 비일비재하다.

    그러나 반복적인 루틴을 제거하면 사업체에서 필요한 고용자 수가 그만큼 줄어들게 된다. 업무의 적당한 비효율이 일정 규모의 고용을 유지시켜주는 근간이 되는 셈이다. 그래서 본인이 다니는 직장에 비효율적인 관행과 시스템화의 미비를 발견한다면 이를 한심하게 여기기 보다는 본인의 고용을 지탱해주는 원동력이라 여기고 감사해야 할 것이다.

    전자결재시스템이 생긴 뒤 종이 낭비는 줄어들고, 결재 프로세스는 매우 간편해질 것이라 생각했지만 결국 잦은 문서 수정과 인쇄로 종이 낭비는 더 심해지고 전자문서를 기안하기 위해 대면결재를 중복으로 받는 경우도 여전히 많다. 인간이 해오던 많은 일들을 앞으로 컴퓨터가 효율적으로 대체하겠지만 인간이 현재 수준의 존엄과 고용, 복지를 누리기 위해서는 그에 걸맞는 크기의 비효율을 같이 창출하지 않으면 안된다. 비효율만큼 시스템에 공백이 생기고, 미처 자동화할 수 없는 작업을 수행하는 인간이 대접받기 때문이다. 부장님의 큰 그림

    먼 미래의 어느 순간 사회 곳곳의 시스템이 관리자 없이도 에러없이 돌아가고, 인간의 노동이 자동화의 공백을 메우지 않아도 되는 때가 온다면 대부분의 인간은 기계로부터 다음과 같은 메시지를 통보받고 영원히 shift+delete 될지도 모른다.

    "지난 60일간 사용하지 않은 프로그램이 있습니다. 삭제하시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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