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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모범생의 투자법
    카테고리 없음 2017. 1. 14. 21:22

    복잡한 금융시장을 예측하기 위해서 모범생들은 새로운 사건이 어떤 영향을 미칠 수 있는지 보고서를 쓰듯이 접근한다. 예컨대 가장 최근의 사례를 보면 미국 대통령으로 트럼프가 당선된 후 금리의 향배에 대해 아래와 같이 논리를 차분히 열거할 것이다.

    • 금리가 상승할 것

    1) 트럼프의 재정정책으로 말미암아 미국의 성장률 개선이 기대

    2) 미국의 기대인플레이션이 회복되며 시장 금리가 상승

    3) 감세와 확대재정정책을 뒷받침하기 위한 국채발행 증가로 채권 공급 압력이 있을 것

    • 금리가 하락할 것

    1)  트럼프 정부의 정치적 불안정성에 대한 우려가 현실화되며 안전자산인 국채 수요가 증가

    2) 과도한 금리 상승에 대한 부담감으로 금리가 조정을 받으며 하락할 것

    일단 여기까지 써보고 보니 금리 상승의 근거가 금리 하락의 근거보다 1개 더 많으니 금리는 상승한다고 예측해야 하는가? 아마 대부분의 사람이 아직 확률이 반반이라고 대답할 것이다.

    더욱 열심히 다른 요인들을 분석해보니 상승의 근거가 100가지를 넘고 하락의 근거는 3개에 지나지 않았다면 어떤가. 아마 일부는 금리가 상승하는 것으로 예상하는 쪽이 더 낫다고 돌아설 것이다.

    이번에는 금리가 상승할 것이라는 근거는 100가지나 되는데 이 중 아무 요인이나 딱 1가지만 발생해도 금리가 크게 상승할 것으로 보여지는 반면, 금리가 하락하기 위해서는 3가지 근거가 모두 발생해야만 하는 것으로 분석된다면 어떠한가. 100명중 99명은 금리 상승 쪽으로 보고서를 쓸 것이다.

    그러나 지금까지 서술한 상황은 오직 언어적으로만 완결된 분석이다. 사람들이 자신이 아는 범위 내에서 파악한 주관적인 요인 선정은 미래의 특정한 경로의 발생가능성에 별다른 도움을 주지 않기 때문이다. 분석을 보완하기 위해 어떠한 확률적인 사고를 덧댄다 하더라도 결국에는 최대한 그럴듯해보이는 상황으로 휩쓸릴 가능성이 높다.

    그래서 내로라하는 전문가들이 내놓는 전망이나 보고서를 읽고 투자에 대한 인사이트를 얻는 것은 무서운 일이다. 내가 잘 모르는 분야에 대한 지식을 얻는 차원에서는 유용할지 모르겠다. 그러나 일단 저자의 주관적인 상황 설정과 세계관에 독자가 휩쓸릴 우려가 있으며  다른 보고서를 읽고 대안적인 견해를 얻는다 하더라도 여전히 예측은 위험하다.

    어떤 상황이 발생하는 것이 그럴듯 하다고 믿는 것과 미래에 발생할 실제 사건은 다른 영역에 속하는 것들이다. 여러 방면을 두루 분석했고 그러부터 미래에 대한 윤곽이 잘 그려져서 안심하고 만족한다고 하더라도 여전히 미래는 어렵고 두려운 것이다.

    충족에 가까운 답을 얻으면 사람은 최적화를 중단한다... 인간은 합리적이지만 그 방식은 제한적이다.

    ("행운에 속지 마라", 나심 탈렙)

    일하다 보면 금융시장에서 논의되고 있는 내용에 대해 보고서로 명료하게 정리할 것을 요청받는다. 복잡하고 얼룩진 현실은 전공자와 전문가들의 손을 거치며 점차 때를 벗고 언어라는 근사한 옷을 입고 다시 태어난다. 노련한 맞춤법 전문가들의 결재를 거치며 이해하기 쉬운 언어로 정제된다. 그리고 그 직장인은 본인이 오늘 하루 열심히 일했고, 시장을 더 잘 이해했노라고 만족한다.

    다이아몬드 원석이 땅에 묻혀있을 때는 흙과 먼지를 뒤집어 쓰고 있었으나 장인의 손에서 아름답게 가공된 뒤 마지막에는 처음에 발견할 수 없었던 아름다운 빛의 굴절을 찬란히 보여주는 새로운 보석이 되는 과정을 떠올리게 한다.


    그러나 반문해보자. 정말 실제 현상이 글 만큼 명료해졌나? 보기에는 좋으나, 복잡하고 얼룩진 현실은 다 씻겨져 버린 것이 아니었는지. 일기에 좋은 일들만 적다보면 언젠간 정말 좋은 사람이 될 것이라고 기대하는 모범생은 아니었는지.

    하나님이 가라사대 빛이 있으라 하시매 빛이 있었고 그 빛이 하나님의 보시기에 좋았더라 (창세기 1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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