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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책]김영하를 '말하다'
    문화생활/책 리뷰 2017. 10. 17. 21:37

    김영하의 산문 <말하다>에는 멋있고 현학적인 문장은 없어도 작가가 담담한 어투로 본인의 철학을 풀어내는 글이다.

    그의 생각이 잘 녹아있는 구절이 몇 가지 있는데 곱씹을만해서 페이지를 갈무리해두었다. 

    "저는 30대 초반에 이미 그런 결정을 내렸어요. 아이를 낳지 않겠다. 그러면 내 삶이라는 것은 어떻게 되는 것이냐. 그냥 살아지는 것, 나로서 끝나는 것이라 생각해요. 그럼 세계는 뭐냐? 세계는 우리와는 전혀 관계없이 존재하는 것이죠. 이 세계는 인간의 운명에 아무 관심도 없습니다"(p.101)

    김영하에게 있어 인간은 세상으로 던져진 존재며 어떤 사명을 짊어진 존재는 아니다. 자연법칙으로 운행하는 이 거대한 우주에서 인간은 그야말로 먼지와 같이 미약한 존재인데도 마치 세계를 바꿀 수 있다는 듯이 의기양양할 필요는 없다는 것이다.

    "그것은 휴머니즘의 반대편에 서 있는 것이죠. 인간이 뭔가를 할 수 있고 세계도 바꿀 수 있고 그 밖에 어떤 의미 있는 것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그런 분들이 계신다면 저는 그 반대에 있어요"(p.102)

    그렇다고 김영하가 무슨 반인격적인 성향일 지닌 사람도 아닐 것이다. 그는 인간의 능력이나 의지를 지나치게 강조하는 휴머니즘 속에 내재한 원리주의와 폭력성을 감지하고는 이를 의도적으로 멀리 하기로 생각한 것 같다.

    "인간에게는 아주 굳건하고 경건한 허무주의가 필요하고, 그런 이들의 가장 좋은 벗은 소설이라고 생각해요"(p.103)

    이 책에서 느껴지는 김영하라는 사람은 떠들석한 술자리를 좋아하는 사람이라기 보다는 내면의 대화를 더 즐기고, 이미 죽은 사람들과의 교류를 더 좋아하는 사람인 것 같다. 변덕스러운 타인들의 기분을 맞춰주기 위한 감정소모를 덜 하는 대신 깊고 정제된 생각과 자기 자신의 취향과 생각의 근원으로 더 들어가는 게 그의 취미와 같다.

    한 인간의 수명보다도 훨씬 더 오래 살아남은 이야기에는 강력한 힘이 있다. 작가는 죽더라도 그 이야기는 살아남는다. 또한 한 사람의 삶이라는 것도 어쩌면 이야기로 쌓아올려진 건물과 같다. 자기가 살아온 길이라는 것을 되돌아볼 때, 그 극도로 주관적인 기억의 취사선택에서도 이야기가 중요한 역할을 한다. 나를 발전시킨 사건, 나를 무너뜨릴 사건, 아쉬운 순간, 자랑스러운 순간 그 모든 기억의 회상이 모두 이야기를 만드는 과정이다.

    김영하의 <말하다>를 끝까지 읽고나니 나와 동질감을 느끼게 되는 작가라는 생각이 든다. 그는 생각 많은 자들의 친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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