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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종원의 골목식당 : 홍탁집 아들에 대한 약간의 변론문화생활 2018. 12. 1. 20:56
백종원의 골목식당은 원래도 인기있는 프로그램이다.
그런데 요새 백종원의 골목식당에 단연 화두인 출연자가 하나 있다. 바로 포방터 시장의 홍탁집을 어머니와 함께 운영하고 있는 홍탁집 아들이다. 지난 주 골목식당에서는 백종원과 홍탁집 아들이 다시 첨예하게 대립하는 부분이 주로 방송되었는데, 시청률은 역대 최고치를 기록했다. 관심이 대단했다.
사람은 변할 수 있는가?
<백종원의 골목식당>은 겉으로는 골목식당의 경영개선과 성공을 꾀하는 프로그램으로 시작되었으나, 최근에는 <우리 아이가 달라졌어요>의 성인판을 생각나게 하는 내용이 주를 이루고 있다. 많은 사람들은 "사람은 고쳐 쓰는 것 아니다", "사람은 절대 변하지 않는다"라는 생각을 하는데, 또 한편으로는 어떤 사람이 비루한 과거에서 벗어나 완전히 새로운 사람으로 재탄생하는 드라마를 바라기도 한다. 시청자들이 홍탁집 아들에게 주목하게 되는 이유도 혹시나 백종원의 개입을 통해 홍탁집 아들이 바뀌지는 않을까(정신차리지 않을까)하는 일말의 기대심리가 작용하고 있는 것 같다.
SBS 골목식당 방송화면 캡쳐
방송에서 백종원은 성실함을 대변하는 아이콘이다. '열심히 노력하며 살아야 한다'와 같이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명제를 외치는 사람이다. 반면 홍탁집 아들은 그의 비밀스러운 과거는 차치하고서라도, 태도가 근면하거나 성실하지 않은 사람이다. 죽을 정도로 노력하거나 치밀한 사람은 아니다. 백종원은 아들의 건방지게 어슬렁거리는 태도로부터 이를 금방 눈치챌 수 있었다.
백종원의 인간개조 방식
이런 아들의 성격과 태도는 백종원이 대변하는 성실함과는 정면으로 배치되므로, 백종원의 솔루션을 받을 조건이 충족되지 않는다. 백종원은 바닥부터 시작해서 성공한 사업가의 반열에 오른 요식업계의 입지전적인 인물인데, 그가 부정적으로 생각하는 사람은 수백, 수천번의 연습으로 단련되지 않아 기초가 부족하고, 특별한 고민없이 식당으로 성공을 바라는 사람이다. 백종원이 보기에는 홍탁집 아들의 태도가 바뀌지 않는 한 영업이 잘 된다 할지라도 어머니만 고생시키는 일이며 이는 정의롭지 않은 일이다. 식당경영에 대한 개선보다 인간개조가 우선이라는 그의 철학이 여기서 드러난다.
사실 골목식당에서 백종원이 내렸던 여러 솔루션은 다소간 인간개조의 측면이 들어가 있었다. 골목식당의 사장들은 자신의 삶의 방식을 지키기 위해 방어기제를 드러내는데, 솔루션 과정에서 백종원은 의도적으로 사장의 권위를실추시키는 미션들을 던진다. 미션을 통해 웬만하면 백종원이 판전승을 거두게 된다. 일단 백종원 개인의 능력치가 상당히 좋아서 테스트나 퀴즈에서도 백종원이 많이 이긴다. 또한 상대방이 굴복할 때까지 미션을 준다. 준비가 안된 상태에서 많은 손님을 받게 한다든지, 관찰카메라를 통해 손님의 냉혹한 평가를 직접 듣게 하고, 잔인하게도 가까운 주변 동료들에게 부정적인 맛 평가를 받게 한다. 카메라와 편집도 그의 편이다. 백종원이 줄곧 들고 다니는 휴대용 카메라는 그의 무기다. 그는 휴대용 카메라로 시선과 해석을 통제하면서 식당의 부족한 점, 자신의 찡그리는 표정 등을 촬영한다. 방송의 편집과정 역시 백종원이 원하는 메시지를 보강하는 쪽으로 이뤄지면서 우호적인 여론을 이끌어낼 수 있다.
백종원은 그가 가진 능력과 자원을 통해 권위를 갖고 권력을 갖게 되며 여러 고집불통인 가게 사장들을 무장해제 시켜왔다. 그러나 홍탁집 아들은 백종원이 지금껏 만났던 출연자 중에서도 개조하기 어려운 강적으로 보인다. 백종원이 준 미션을 겉핥기 식으로만 하거나, 본인이 힘들다는 이유로 핑계를 대거나 미션을 게을리 하는 모습을 보이다가 백종원에게 실망스러운 모습을 반복적으로 보여주었다. 오죽하면 백종원은 그답지 않게 방송에서 욕이 '삐'처리 될 정도로 격앙된 모습을 보이기도 한다.
노력이나 좋은 삶의 태도를 강제할 수는 없다
그러나 내 생각에는 홍탁집 아들에 대한 일반의 여론은 정도가 너무 지나치다. 시청자들은 사람이 잘 바뀌지 않는다는 사실을 이미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몇 주에 불과한 짧은 시간 내에 홍탁집 아들이 그대로인 것을 보고 또 다시 욕을 한다. 혹시나 하는 기대를 갖고 있다가 기대가 무너지자 이를 한 개인에게 책임을 돌리는 것이다. 그러나 사람이 잘 바뀌지 않는다는 사실을 다시 확인했다고 해서 홍탁집 아들이 책임을 져야 하는 것은 아니다. 애초에 짧은 시간에 바뀔 수 있는 게 사람이라면, 홍탁집 아들이 애당초 현재와 같은 모습으로 살지는 않았을 것이다.
또한 노력과 성실함이라는 덕목을 모두에게 요구하는 것은 무리다. 어떤 사람에게는 더 나은 미래를 위해 고통스러운 현재를 감내하는 것이 남들보다 더 어려울 수도 있다. 그런 사람에게 무작정 인내하고 노력하라고 주문하는 것은 무리한 요구일 수 있다. 적당한 손님만 받고 적당한 노력만 투입하는 것이 그에게는 더 행복한 삶일 수도 있다. 예컨대 모든 국민이 술과 담배를 끊고 매일 1시간씩 적당한 운동과 육류와 채식이 균형을 이룬 식단을 지속한다면 건강한 삶을 살 확률이 매우 높지만 국가가 이를 강제할 수는 없는 일이다. 누군가에게는 열심히 사는 것보다 적당히 사는 삶을 선택할 자유도 있는 법이며, 한심해 보일지라도 지금과 다르게 살도록 강제할 수는 없을 것이다.
SBS 골목식당 방송화면 캡쳐
노력으로 바닥부터 올라온 백종원이 보기에 홍탁집 아들은 당연히 답답한 사람이다. 그럼에도 그는 아들을 변화시키기 위해서 다른 사람보다 몇 배 이상의 노력을 투입하며 최선을 다 하는 것처럼 보인다. 방송에서 이런 백종원의 진심이 느껴지기 때문에 그가 행하고 있는 인간개조에 대한 노력을 마냥 비판할 수 없다. 백종원은 분명 어려운 미션을 수행하고 있는 것이다.
한국 사회에는 유독 "해보기나 했어?", "노력을 하지 않았기 때문에 실패했다", "포기하지 않으면 불가능은 없다"는 구호가 사회를 지배하고 있는 것 같다. 사실 힘들면 눕고 싶고, 아프면 장사도 쉬고 싶은 것이 인간의 심리다. 어떤 사람은 인내심이 약하거나 성실하지 않을 수 있음을 받아들여야 한다. 사람마다 주어진 환경과 능력도 다르며, 삶의 모습도 다를 수 있다. 게다가 노력을 한다고 누구나 인간승리를 경험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우리 주변의 누군가에게는 열심히 사는 것 자체가 숨이 막힐정도로 힘들 수 있음을 인정해주자. 안타깝긴 하지만, 굴러들어온 기회를 발로 차버린다고 해서 홍탁집 아들을 너무 욕하지는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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